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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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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까망붓 작성일17-12-31 15:14 조회1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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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의 시작, 클레르몽 종교회의

(1095년)

 

1095년 프랑스의  클레르몽페랑에서 종교회의가 있었다.

이슬람 교도의 침입에 맞서, 크리스트교 국가들이 십자군 전쟁을 시작한다.

 

 

이 때의 서유럽은 봉건 제도가 완성되고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긴 사람들의 성지 순례가 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태어나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했던 성지에 가고 싶어했다.

이는 점점 유행처럼 번졌고, 성지 순례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성지인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계에 있었다.

초기의 성지 순례는 관대한 이슬람 왕조가 지배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셀주크 튀르크 족이 이슬람 세계를 점령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셀주크 튀르크 족은 성지 순례를 간 순례자에게 박해를 가하였고...

 비잔티움 제국까지 공격했다.

 

결국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교황, 우르바누스2세(1042~1099년) 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순례 박해에 좋지 않은 감정이 있던 교황이 이를 받아들여... 성전을 선포했다.

 

그래서 서유럽 사람들은 분개해서 '신의 뜻'을 외치며 이슬람으로 원정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들은 성전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예루살렘까지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심도 있었다.

 

그 당시는 봉건 제도 였지만 새로운 기사와 영주에게 줄 땅이 부족한 실정이었으며....

부족한 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또한 교황은  십자군에 참가하면 모든 교회법상의 처벌이 면제 된다고 하였으며

심지어는 십자군 전쟁에서 싸우다가 죽으면 영혼은 곧 천국에 간다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교황의 말을 믿고, 상인, 농부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200년 동안 총 8회 에 걸쳐 진행되었다.

   

1차 십자군 전쟁, 예루살렘의 점령

( 1096~1099년)

1096년, 선발대를 준비해서 보내는데...

많은 준비를 못해서 농민이나 일반시민 등으로 구성된 '민중 십자군'의 형태를 띄었으며

예루살렘에 도착하기도 전에 셀주크 튀르크 족에게 공격을 받아 전멸을 당했다.

1096년 10월, 선발대였던  민중 십자군은 전멸  당하고 '은자 피에르'만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민중 십자군의 원정에서 교훈을 얻고 충분히 준비해서 정규 십자군을 결성했다.

  정규 십자군은 목표로 했던 콘스탄티노플을 되찾고 비잔티움 제국의 보급을 받으며

니케아 와  안티오크 를 차례로 점령하며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1099년, 정규 십자군은 셀주크 튀르크 족을 물리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차지 하게 된다.

1차 십자군 원정 뒤  1144년 전열을 재정비한 이슬람 군에 의해 에데사를 빼앗기게 된다 .

 

 

2차 십자군, 살라딘의 등장

(1147~1149년)

2차 십자군은 교황 에우제니오 3세가 프랑스 왕을 설득하여 일으켰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원정군 중에 적군의 감언이설에 속아 중간에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았으며

2차 원정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람 세계에 새로운 영웅 이 나타났다.

 

아랍 세계를 통일한 살라딘은 2년만에 십자군이 점령했던 예루살렘과 다른 나라들을 거의 모두 탈환했다.

살라딘은 셀주크 튀르크 족을 잠재우고 이슬람 세계를 강하게 결속시켰다.

 

살라딘

(1137~1193년

오늘날의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쿠르드 족의 귀족인 나즘 앗 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이유브 왕조를 창시 하였으며 본명은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이다.

북아프리카에서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지금의 터키)에 이르는

이집트 제국의 아이유브 왕조를 형성하고  이슬람 세계를 통일했다.

뛰어난 지도력과 역량으로 이슬람과 크리스트교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3차 십자군 원정, 왕들의 십자군

(1189~1192년)

유럽은 또다시 십자군을 결성했고 3차 십자군 원정이 이루어졌다.

1189~1192년까지 이루어 진 것으로 '왕들의 십자군'이란 호칭이 붙었다.

 

3차 십자군 원정은 신성로마제국의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 (1122~1190년),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 (1157~1199년),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 2세 (1165~1223년) 등

주요 국가의 유명한 왕들이  대거 참전했다.

 

 

[리처드1세의 십자군 참전]

 

프리드리히 1세는 가장 나이가 많았는데 제일 먼저 출발했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필리프 2세는 리처드 1세와 사이가 나빠져서 되돌아갔다.

 

결국 영국의 리처드 1세 혼자 살라딘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 .

리처드 1세의 군대는 잘 훈련되고 강력한 무기를 갖추었다.

 

그래서 1191년 아르수프에서 1192년엔 자파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리처드 1세는 살라딘과의 교전을 통해 몇 개의 도시를 탈환하지만  예루살렘까지는 얻지 못했다 .

 

결국  리처드 1세와 살라딘은 1192년 휴전 조약을 체결 한다.

이 조약은 예루살렘을 이슬람의 땅으로 인정하지만 가톨릭교도들의 순례는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로빈 후드 이야기

 

우리 나라로 치면 '홍길동'에 해당하는  영국의 홍길동 , 로빈 후드의 이야기는

영국의 시, 희곡 등 문학 작품에 등장하며, 실존 인물 여부 등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는 '사자왕'이라는 애칭을 듣고 있던 리처드 왕이 십자군 원정에 나서자 그 통치 공백을 동생 존이 이어받는다.

하지만 존은 집권하자 마자 부하인 노팅엄의 치안관과 의기투합해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해 원성을 듣게 된다.

이때 왕의 소유인 사슴을 사냥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돼 처형 위기를 맞은 로빈 후드는

간신히 도망친 뒤 셔우드 지방을 근거지로 해서 탐관오리들을 응징하기 의한 의적들을 규합해 우두머리가 된다.

 

평민 출신이지만 뛰어난 활 실력을 가진 로빈 후드는 존 왕과 탐관오리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마을의 평화와 어려움에 빠진 서민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준다.

 

영화 '로빈 후드'에서는 로빈 후드이  리처드 왕의 용병으로 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

그는  프랑스 전투에서 대활약을 펼쳤으나 리처드 왕이 전사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 온다.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로빈후드는 이 모든 참담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유를 위해 왕권에 도전하다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료들과 함께 부패한 존 왕에 맞서게 되는데…

 

 

 

4차 십자군 원정, 부패의 극에 달하다

(1202년~1204년)

 

 이 시기에는 교황의 권위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이 힘을 이용해 이슬람의 본거지인 이집트를 공략하자며 십자군을 모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프랑스 기사들이 이 원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은 육로 대신 해로를 통해 이동하기로 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모였다.

 

그러나 운송과 물자 공급을 해 줘야 할 베네치아 공화국 상인들은 대가로 너무 큰 금액을 요구했다.

 

십자군은 그런 큰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었고,

상인들의 부탁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무역 경쟁 도시인 달마시아의 '자라'를 공격했다.

'자라'는 같은 크리스트교 도시였기에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화가 난 교황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파문했는데도 4차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까지 공격하고 약탈했다.

 

사실 1차 십자군 원정 후에는 십자군이 점점 타락하고 있었다.

그들은 목적했던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보다 주변 도시를 약탈하기 일쑤였으며... 4차 원정에서 극에 달했다.

 

소년십자군

(1212년)

1212년에 프랑스 및 독일의 소년, 소녀들이 일으킨 십자군으로 '어린이 십자군'이라고도 부른다.

프랑스의 양치기 소년이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성지를 회복하러 가자고 해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십자군 원정이 실해한 건 어른들이 깨끗하지 않아서이며 순수한 아이들이 가야 한다고 했다.

수천, 수만 명의 아이들이 뒤를 따랐고, 독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 많은 아이들이 성지로 향하였다.

 

소년 십자군은 지중해 바닷가에 모여서 하느님의 기적을 기다렸으나,

악덕 상인들에게 속아 바다에 빠져 죽거나 노예로 팔려 나가는 비극을 겪게 된다.

 

5~8차 십자군, Tried in vain

 

5차 십자군 원정

(1217년~1221년)

이집트 공략을 목표로 한때 나일 강변의 요새를 점령했으나 곧 퇴각했다.

 

6차 십자군 원정

(1228~1229년)

이슬람과 협상으로 예루살렘을 회복하였으나 이집트에 점령당하였다.

 

7, 8차 십자군 원정

(1248~1254년, 1270년)

프랑스의 왕이 선두에 나서 이집트의 일부를 점령하나 전투에 패해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다.

이후 마지막 '최후의 십자군'이 나섰으나  최후의 거점마저 함락되자 크리스트교는 서아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십자군 원정 이후 유럽의 변화

 

십자군 원정의 실패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손해를 보았고,

교황은  면벌부의 판매로 교회의 타락과 부패 를 일으키는 등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으나

(이후 교회의 부패를 지적하고 쇄신하기 위한 종교혁명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중세 유럽은 비잔티움 제국과 이슬람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문화가 뒤떨어졌음을 자각하고,  이후  유럽의 문화적 발전을 이루는 계기 가 된다. 

 

또한 여덟차례에 이르는 십자군 원정으로  도시와 상업이 발전 하고

봉건 질서가 무너지면서 중세 유럽은 근대 사회로의 길 을 걷게 된다.

(봉건 질서는 9~10세기에 성립되었고, 십자군 원정이 끝난 13세기 후반에 무너진다.)

 

영주도 기사도 힘이 없어지고 농노도 장원을 이탈하여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유럽인의 세계관이 바뀌어  항해 기술이 발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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